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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돌체라떼마니아 2022. 11. 2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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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프랭클-사진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집필하였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뿌리까지 없애기 위해서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에 위치한 빈 의과대학의 신경 정신과 교수로 근무했고,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 세러피를 교육했다. 로고 세러피는 실존적 심리 치료 방법으로, 삶의 가치를 깨닫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강제 수용소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을 자유와 책임이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실존 분석을 수립해 의미 치료를 주창했다.

압도하는 가치의 근원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최고의 책이라는 데에 이견을 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 빅터 프랭클이 신경하고 정신의학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학자로서 심리학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을 훈련받았는지 만으로 무슨 학자인지가 전해진다면 심리학이 성립되기 이전의 학자였던 분트나 제임스도 심리학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유대인인 빅터 프랭클은 나치 독일 정권이 만들어낸 강제 수용소에서 삼 년의 시간을 견뎌냈다. 스스로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지칭했으며, 자신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글로 적어 세상에 드러냈다. 빅터 프랭클은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실존주의에 기반들 둔 인본주의 심리학을 전개했고, 그 과정 속에서 심리학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프랭클이 수용소 경험에서 완성했던 로고 세러피(의미 치료)도 의학자로 일하던 때에 어느 정도의 틀을 갖추었을 것이다. 여기서 로고 세러피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내도록 돕는 심리치료방법을 말한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 내는 힘

빅터 프랭클은 처음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테레지엔슈타트 강제 수용소에 갇혔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숨을 거두셨고, 어머니와 아내는 곧 다른 수용소로 옮겨져서 삶을 마감했다. 그 후 그는 혹독하기로 이름난 아우슈비츠를 거쳐서 며칠이 지나고 또 다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독일이 패전한 후에야 겨우 풀려났다. 강제 수용소 체험을 다룬 글들은 많이 있지만,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으므로 다른 그들과는 다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강제 수용소는 희망과 절망이 혼자된 곳이었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수감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모두 수감자들의 간절한 소망에서 만들어진 헛소문에 불과했다. 그것을 깨닫고서는 낙담에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발견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현실의 의미를 연구하는 것은 20c 전반의 사상을 지배하였고, 실존주의가 그러한 경향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나만 할 수 있는 일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에 자신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억지로 물어야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랭클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가 아니라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내 인생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사는 것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용소 밖에서 자녀가 기다리는 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일을 하는 전문가여서 그 일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의미, 자기에게 매달려있는 기대를 상상해야 한다고 프랭클은 전해주고 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희망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프랭클의 주장에 따르면 그 질문은 질문자에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거운 놀이기구를 탔을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변화 없이 흘러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오히려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 절망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온리원이 되는 방법은? 등의 질문이 세상에 가져올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할 시기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저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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